석곡선생의 생애와 학문에 대해 알아봅니다.
子는 叔玄 號는 石谷 慶北 月城人으로 哲宗 乙卯(서기 1855년) 慶北 迎日郡 夫山面(東海面) 林谷里에서 誕生하셨고, 後에 石洞에 移居하여 石谷이라 自號하시고, 癸亥(1923년)에 卒하시니 享年 六九才였다.
家事가 極貧으로 樵勞辛務하여 學習을 연마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성장함에 따라 立志하여 無師獨學으로 性理學을 연구하니 그 경지가 심오하게 되어 經史로 부터 제자백가에 이르기 까지 無不通達하였고, 周易과 醫學을 연구하여, 근세에 보기 드문 大儒로 자타가 공인하여 그 門徒가 수천에 달하였다.
이러한 학문의 바탕에서 그는 일찍부터 程朱學을 비롯한 先儒들의 六經注疏에 의혹을 가져 宋儒의 六經注疏를 위주로 刪削하여 加筆矯正함을 筆頭로 毛詩 尙書 周易 春秋 周禮 儀禮 二十六冊과 論語一冊 經髓三篇(大學 中庸 禮運) 共一冊과 曲禮一冊 孝經一冊 唐宋古詩一冊 千字一篇 小學稽善一冊 道德經題一篇 明心寶鑑一篇을 刪正하였으며, 西曆(양력)의 法을 논한 浦上奇聞一冊 黨派의 是非를 논한 石谷心書一冊 數學을 論한 九章要訣一冊 그외에도
神敎術世文一冊 石谷散稿一冊등이 있고 醫書로는 醫鑑重磨三冊 黃帝素問大要 本草上下二篇을 저술하여 발표하니 斯界가 大振하였다.
公의 학문과 사상은 碑文(“나는 마음은 黃帝와 老子에 遊하고 行은 孔子를 守하고자 한다.”)에 나타난 것 처럼 공자로 돌아 갈 것을 주장하여, 宋儒의 六經注疏를 刪削함에 무능한 권위주의자인 腐儒들에게 비난과 嘲笑를 받았으나, 당세에 이론적 학리적으로 六經注疏의 刪削을 부당하다고 논쟁한 학자는 없었다.